우리 애기가 14살 생일을 이틀 앞두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앙쥬 없는 길고 긴 3일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난 기억력이 나쁜데 앙쥬와 함께한 마지막 순간, 모든 순간 잊고 싶지 않아서.. 용기를 내서 이 포스팅을 작성해보려 한다.

작년에 앙쥬의 담낭결석 때문에 크게 마음을 졸였지만, 식단관리를 하고 하루 4회 급식을 한 후로 경련도 없어지고 상태가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갈거라고 생각은 못했다. 물론 백내장은 점점 더 심해져서 그렇게 좋아하던 햇빛도 못 바라볼 정도로 시력이 상했고, 입맛이 없어졌다 돌아왔다 반복하고, 아주 가끔은 엄한 곳에서 사람을 찾거나 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건강한 편이었다. 심하게 컨디션이 안 좋을 땐 소변 실수를 하기도 했는데 떠나기 전 날은 그렇지도 않고 밥도 네 끼 다 잘 먹었다.

다만, 저녁부터 갑자기 뒷다리에 힘이 풀려서 이상하게 걷기 시작할 뿐이었다. 뒷다리가 풀리는건 관절염이나 뇌질환일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기 때문에 많이 속상했지만, 이제 어지간한 증상에는 응급실에 달려갈만큼 놀라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울면서 앙쥬 다리 마사지를 해주기만 했다. 밤에 침대에 다 같이 누워서는 1월 2일부터 시작한 9일기도도 어김없이 드렸다. 묵주기도 청원 중 하나는 앙쥬가 먼 훗날, 때가 돼서 하느님이 데려가시는 그 날까지 고통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날 밤은 이상하게 잠이 잘 안 왔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왠지 그날 밤 잠자고 일어나면 앙쥬가 잘못돼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앙쥬는 40-50분에 한 번씩 깨 뒤척이고 싶어했지만 뒷다리가 말을 안 듣자 놀란 모양이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다리를 마사지를 해주며 '괜찮아'를 반복했다. 그러면 앙쥬는 금방 5초 내에 픽 쓰러져 또 잠에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보통 앙쥬는 자다 깨면 그렇게 빨리 잠에 들지 않는다. 그냥 스르륵- 잠에 든게 아니라 이상하리만큼 졸음이 쏟아졌던 것 같다.) 오전 3:30이 되어서야 나도 잠을 청했다. 잠을 자면서도 두어번 앙쥬가 깰 때면 나도 잠깐씩 깼다가 오전 4:30에 남편이 출근 준비하러 간 기척에 이어 앙쥬가 일어나서 나도 깼다.

그때 앙쥬는 어릴 때부터 늘상 내던 킁킁(huffing) 소리를 내며 괴로워했는데 평소와는 다르다는걸 직감했다. 3초, 길어야 5초. 깜짝 놀란 앙쥬의 눈이 엄청 커지더니 그대로 굳어버리고 혀가 하얗게 변하며 입 밖으로 늘어졌다. 난 울면서 남편을 불렀다. 내가 급하게 평소에 익혀둔대로 인공호흡을 해봤지만 앙쥬는 미동도 없었다. 남편은 앙쥬 입이 벌어지는 반사작용을 보고 아직 살아있다고 착각을 했다. 남편이 급하게 청진기를 가져와 앙쥬의 심장박동 소리를 확인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난 앙쥬가 내 품안에 쓰러졌을 때부터 앙쥬의 크게 뜬 눈이 깜짝도 안하는걸 보고 이미 떠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

TV에서 보면 눈 뜨고 죽은 사람의 눈꺼풀을 손으로 내리쓸면 쉽게 감기던데 앙쥬의 눈은 잘 감겨지지가 않았다. 눈도 못 감고 있는 앙쥬를 보니 더욱 불쌍해서 미친듯이 통곡을 했다. 전화로 소식을 전하자 엄마와 선영이도 나와 함께 통곡해주었다. 나 때문이었다. 내가 앙쥬가 고통없이 떠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서 이렇게 손도 못 써보고 순식간에 앙쥬가 떠나게 된 것이었다. 하느님이 내 기도에 얼마나 잘 응답해주시는지 알면서, 더 조심했어야했는데 내가 경솔했다.

앙쥬의 눈은 앙쥬가 떠나고 한참 후에야 손가락에 힘을 줘 계속 고정시킨 후 가까스로 감겨졌다. 늘어진 혀도 최대한 다시 집어 넣고 입도 다물게 하는데는 앙쥬의 몸이 식기 시작할 때에서야 가능했다. 눈을 감기고 나니 평소처럼 평화롭게 잠자고 있는 우리 애기 모습이었다.

해가 뜨고 앙쥬가 좋아하던 햇볕 잘 드는 창가에 눕혀주었다. 햇볕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최근 몇 주간 햇살에 깜짝 깜짝 놀라서 여기 눕지도 못 했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외출도 햇빛 때문에 무서워해서 나가지도 못 했다. 이제서야 햇볕에 누울 수 있게 되었구나, 우리 아기...

평소에 늘 사랑한다고 말은 해왔지만, 떠나기 전날 낮에 누워있는 앙쥬가 괜시리 짠해보여 평소와는 달리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주절주절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줬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우리 앙쥬는 이름처럼 하늘에서 온 천사였다. 일반 강아지들이 흔하게 피우는 말썽 한 번 안 부리고, 늘 앙쥬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줬다. 욕심 같아선 앙쥬가 훗날 태어날 우리 아기를 보고 갔으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아이가 생기면 내 신경이 분산될 거고, 만약에 그런 상태에서 앙쥬가 떠났으면 내가 죄책감으로 더 힘들어했을 것 같다. 우리 앙쥬가 너무 착해서, 언니 마음 안 아프게 하려고.. 아프지도 않고 우리끼리만 있을 때 이렇게 순식간에 떠났구나.

무릎 위에 두면 그냥 잠자는 것 처럼 보였지만 앙쥬의 몸이 점점 차갑고 딱딱하게 변했다. 살짝 나온 혓바닥도 점점 까맣게 변해가고 있었다. 뽀뽀를 해도, 쓰다듬어봐도, 점점 앙쥬가 앙쥬같이 안 느껴져서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변해가는 앙쥬의 몸을 데리고 있기가 힘들어서 어차피 당일에 화장을 해주려고는 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바닷가라도 한 번 데려간 후 화장을 하려고 했는데.. 업체에서 당일 화장을 하려면 오전에 데려와야 한다고 해서 부랴부랴 화장터로 갔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온 앙쥬의 유골은 평소처럼 밤엔 우리와 함께 침대에 있고, 낮엔 소파에 있거나 앙쥬 집에 들어가있다. 앙쥬가 떠난 후로 우리의 일상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더욱 슬플 것 같다. 난 아침에 눈 뜨자마자 앙쥬에게 아침밥을 차려주던 생각에 울며 일어난다. 외출하면 여전히 앙쥬 밥때 챙기려고 시계를 보게 되고, 남편 역시 어제 밤에 앙쥬에게 뽀뽀하지 못한지 이틀 째라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 보다는 난 괜찮다. 예전에 상상했을 땐, 앙쥬가 없으면 나도 죽을 것 같고 심장이 미어져서 터져버릴 것 같았는데... 의외로 그렇진 않다. 여기엔 감사해야할 사람들이 많은데... 가장 먼저 우리 앙쥬. 앙쥬가 지난 1년 간 노화와 지병을 겪으면서 내가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도와줬고, 그리고 작별인사를 했고, 내가 1초도 놓치지 않고 임종을 곁에서 지켰다는 점에서 많은 위로가 된다.

그리고 하느님. 어찌됐던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내 청원대로라면 앙쥬는 아프기 전에 하느님께서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가신 거다. 앙쥬가 확실히 천국에서 행복하게 있을 거라는 걸 안다는 것도 많은 힘이 된다.

그리고 재작년에 쭈를 먼저 보낸 선영이. 그 당시 내가 취직을 할까 많이 고민하던 때였는데, 선영이가 집에서 앙쥬랑 함께 남은 여생을 보내는게 후회 안 할 거라고 조언을 해줬다. 선영이 덕택에 앙쥬가 아플 때, 내가 밥도 직접 만들고 하루에 4회 급여도 할 수 있었고,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기 때문에 후회가 없다.

그리고 그런 내 선택을 지지해준 남편. 내게 앙쥬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고, 함께 앙쥬를 사랑해줘서 고마웠다. 지금도 내 곁에서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고맙고...

12월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보리스(친구 개)에게도 고맙다. 보리스가 갑작스럽게 암 판정을 받고 일주일만에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1월 초에 우리도 검진차, 입맛이 없던 앙쥬를 데리고 병원에 데려갔는데.. 최 선생님께서 피부병이 심해져서 입맛이 떨어진 걸거라며 스테로이드와 항생제를 처방해주셨고, 약을 먹은 후로 앙쥬가 정말 밥도 잘 먹고, 핥는 증상도 많이 완화돼 털도 다시 많이 자랐었다. 앙쥬가 마지막 달을 비교적 건강하게 지내게 해 준 보리스가 고맙다.

그리고 이건 앙쥬가 떠난 후 알게 된거지만... 1월 초 내원 후, 최 선생님께서 시어머니께 전화하셔서 앙쥬가 수명을 거의 다 한 것 같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차마 그 말을 우리에게 전하지 못 하셨는데, 그래서 우리에게 그걸 직접 말씀 안 하신 최선생님과 시어머니 두 분께 모두 감사하다. 만약에 1월에 그 말을 들었더라면 기분도 나쁘고 앙쥬가 언제 갈까하는 조바심에 남은 시간을 평화롭게 지내지 못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다행히 앙쥬가 이렇게 떠나고 그 말을 전해들으니... 앙쥬가 어디가 아파서 고통 속에 죽은 게 아니라, 장기의 수명이 다해서 자연사한 게 거의 확실해지니까 마음이 편하다.

마지막으로 좀 디스거스팅하지만... 우리 집에 출몰한 바퀴벌레들에도 감사하다. 앙쥬가 떠나기 2주 전부터 집에 바퀴벌레가 생겨서 앙쥬를 혼자 놓고 어딜 나갈 수가 없어서, 정말 씻는 시간 빼곤 1초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2주 동안 장도 안 보고, 불가피하게 외출해야할 땐 앙쥬를 데리고 나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앙쥬랑 함께 했던 참 귀한 시간이었네.

물론 죽을 것 같지 않다고 해서 슬프지 않은 건 아니다. 가만히 있다가도 갑자기 앙쥬가 보고 싶어서 혹은 앙쥬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펑펑 울기도 한다. 아직 제대로 식사를 할 정도도 아니다. 언젠간 앙쥬가 없다는 게 익숙해질까? 지금 당장은 모르겠지만 앙쥬가 내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거란 것은 안다.

앙쥬야, 언니에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외동으로 태어나 사랑을 받는 것에만 익숙했던 언니에게 베푸는 사랑의 기쁨을 가르쳐줘서 고마워. 언니가 부족했던 부분은 모두 미안해. 넌 영원한 내 동생이야.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거야. 우리 예쁜 강아지, 나중에 꼭 만나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