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준비 기간

검사 결과 모두 정상으로 나왔던 우리 커플은 임신 준비한지 딱 1년 6개월의 기다림 끝에 자연임신에 성공했다. 처음에 준비 시작할 땐 공교롭게 앙쥬가 별이 된 직후라 슬픔도 컸고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아기가 필요하다고 느끼던터라 조바심도 컸는데, 임신이 될 쯔음엔 그냥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매일 같이 운동했던 달도 있고, 아니면 아예 누워서 지냈던 달도 있고, 1-1-1이다, 2-2-2다, 착상에 좋은 음식, 몸에 좋다는 차 등등 챙겨먹을 땐 무소식이었는데 오히려 포기를 하니까 되더라고..? 인공수정을 하면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까지 할 마음의 준비는 안 되어있었는데 참 다행이었다.

 

3주차

나는 매일 임테기를 하며 전전긍긍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대략 배란 후 10일부터는 이틀 간격으로 임테기를 해보았다. 푸른끼 도는 회색 시약선에 농락 당한 적이 한 번 있어서 배란 10일 후 희미하게 떴던 핑크색 두 줄에도 크게 흥분하진 않았다. 긴가민가 하는 마음으로 다른 브랜드의 임신테스트기를 사기 위해 마트에 걸어 다녀왔고, 두 테스터 모두 두 줄로 뜨는 걸 보고 나서야 기뻐할 수 있었다.

30대 중반에 접어 들며 PMS가 극심해져서 임신 극초기증상은 여느 때 PMS와 비슷했다. 예를 들자면 Y존 칼에 찔리는 듯한 통증, 가슴 커짐/쓰라림, 생리통 등이 그러했다. 백수라서 잠은 원래 많이 자는 편이라 잠에 대해선 딱히 달라진 점은 모름ㅋ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평소 장이 좋은 편인데 며칠 내내 설사기가 있었다.

 

4주차

임신 사실을 빨리 안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실감이 나는 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4주차가 현재까지 통틀어 그나마 행복했던 시기가 아닌가 싶다. 컨디션이 그렇게 나쁘지도 않아 매일 40~50분씩 산책을 했고, 실감은 나지 않지만 산책할 때마다 설레는 맘으로 뱃속의 아기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이 때가 좋을 때란 걸 알았다면 더욱 더 즐겼을텐데...

 

5주차

지옥의 입덧이 시작되었다. 토덧+체덧+양치덧+침덧... 덧이란 덧은 다 했다. 비타민 B6와 Unisom을 하루에 2회씩 먹어 그나마 토는 덜 했는데 그렇다고 살만했던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 입덧을 일주일만 했었기 때문에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경기도 오산이었음ㅇㅇ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 말을 믿었을까 싶다. 엄마는 원래 생리통도 없었고 나랑 엄마는 완전 달랐던 것인디요.

 

8주차

미국은 최소 임신 8주가 지나야 초진을 받을 수 있다. 딱히 피가 비치진 않았고 속이 계속 울렁거렸기 때문에 기다리는 동안 초조하진 않았다. 입덧으로 힘들어서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동안은 내 안에 생명체가 있다는 점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초음파에 팔을 조금씩 움직이는 2등신 쪼꼬미를 보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사진엔 잘 안나왔지만 영상으론 잘 보였는데... 뭔가 말로 형용할 수 없게 감격스러웠다. 나중에 알고보니 8주차 초음파가 가장 젤리곰스럽고 귀엽다던데 나는 질초음파를 안하고 배로 봐서 그랬는지 캡쳐가 저 따위로 흐리게 찍혔다 ㅜ 그래도 내 머릿속엔 있다고... 귀여운 젤리곰...

 

9주차

부모님과 시부모님이 일주일 간 방문하셔서 처음엔 여기저기 놀러 다니느라 덜 아팠다. 난 입덧이 끝나가는 줄 알고 좋아했지만 며칠 후 다시 입덧과 과민성 대장증후군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특히 부모님이 떠나고 10주~12주는 정점을 찍어서 약을 먹고도 매일 하루에 두 번씩 토하고, 자다가도 토하고의 반복이었다. 샤워라도 하려고, 밥이라도 하려고 10분 이상 서 있으면 숨이 차고 죽을 것만 같았다. 전혀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체덧 때문에 숨도 잘 안 쉬어지고 하루 종일 눕지도 앉지도 못하고 끙끙거리며 앓았다.

그토록 기다리던 임신이었는데도 임신증상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내가 30년 넘게 알아온 내 신체가 날 배반하는 느낌이었다. 이 정도로 아플 수도 있다는 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온 세상에 배신감이 들었다. 뭐, 알았다고 하더라도 아이를 원하니까 임신을 했기야 했겠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보다는 마음의 준비가 좀 더 되었겠지.

사람마다, 또 임신마다 증세가 다르다고 하니 누구에게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고, 그 누구도 날 도와줄 수 없어서 너무나 외로웠다. 의사선생님은 참을 필요가 없다며 약을 먹으라고 하는데 약 먹어도 약효가 없었다. 아무 도움 없이 나 혼자 병마와 투병하는 느낌이었다. 24시간 내내 구토하고 10키로씩 빠진다는 임산부들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도 나도 매일 죽을 것 같고 죽을 맛이니까 이정도 불평은 할 자격이 있지 않나 싶었다.

토하다가 서러워서 우는 날도 있고.. 공교롭게도 우리 앙쥬가 살아있을 적 앓던 증상(설사, 복통, 위산역류 등)과 비슷한 증상이 많아서 직접 겪어 보니 우리 애기가 이렇게까지 힘들었겠구나 싶어 앙쥬가 불쌍해서 더 울던 날도 있었다. 난 앙쥬를 너무 사랑하니까 내가 고통스러워도 기꺼이 앙쥬 대신 아플 각오는 되어있다. 그런데 뱃속의 아기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을 뿐더러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이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사랑한다고 느끼기가 어렵다. 상황이 이런데 아무 이유 없이 임신했다는 이유로 이렇게 고통스러운 게 억울했다. 아기를 원망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여자라서 이런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게 원망스러웠다.

 

12주차

컨디션이 하나도 좋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병원에 갔다. 이번엔 좀 더 사람다워진 아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8주차에 본 젤리곰에 비해 너무나 커져있어서 난 덜컥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뭐랄까... 내가 마음의 준비도 하기 전에 내 안에 있는 다른 생명체가 너무 빨리 큰다는 점이 두려웠다. 반면에 남편은 사람 같은 모습에 감격해 울더라고.

니프티 검사를 하며 피검사를 통해 성별 검사를 맡긴 상태였지만 그세를 못 참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각도법을 물었다. 그리고 댓글은 하나 같이 '아들 각도의 정석'이라고 달렸다...

10대 때부터 내가 그린 미래엔 딸이 있었다. 내가 외동딸이고 엄마와 친하기 때문인지 그냥 단 한 번도 내가 딸이 아닌 아들 엄마가 될 거란 생각은 못 했기 때문에 너무 충격으로 다가왔다. 섭섭한 정도가 아니라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요즘에야 다들 딸을 선호하기 때문에 내가 성차별을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 그냥 난 어릴 때부터 너무나 당연하게 딸을 갖고, 딸과 노는 상상만 해왔기 때문에 거의 스스로를 세뇌 시킨 수준이었던 것이다. 다시 생각하면 확률이 50:50인데 어떻게 그렇게 딸이라고 확신을 했는지 우습기도 하다. 며칠 후 피검사 결과에도 반전은 없이 아들로 확정이 되었고, 지어놨던 딸의 이름 대신 아들 이름을 물색해야 했다.

 

중기에 접어들며

아이를 아직 가지지 않은 사람을 겁주려는 건 아니지만, 돌이켜 보아도 임신 초기엔 힘들고 고생했던 기억이 많다. 아름답게 포장하고 싶지도 않고, 포장할 수도 없는 경험이었다. 입덧은 18주차인 현재도 진행형이라는 것 ^^... 나보다 더 고생하신 분들, 힘든 몸 이끌고 출퇴근 감행하셨던 분들 모두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경의를 표하면서 다시는 또 임신을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며 이 포스팅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