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분만을 앞두고 임신 후기 (27~38주) 이야기
Posted 2022. 5. 23. 12:25
임신 중기는 임신 초기와 증상이 거의 비슷했으므로 중기 포스팅은 스킵하고 임신 말기 포스팅을 해본다.
28주차
입덧, 체덧, 위산역류로 좀비생활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큰 이벤트가 없었던 내 임신 기간 중 그나마 큰 일(?)이 있다면 28주에 유산소 운동을 시작하고는 새빨간 피가 비친 것이었다.
아래는 내 운동기록표 (● 근력, ● 유산소)
근력운동이라고 해봐야 격일로 마일리 다리운동과 티파니 허리운동 하루에 10분씩 한 것이 다고, 유산소는 하루에 30분~1시간 걷는 것이 뿐이다 ^^;;; 하도 시체처럼 누워있다가 운동을 시작해서 그런지 이나마도 컨디션에 따라 많이 힘든 날도 많았다. 왜 임산부 요가는 하지 않았냐 묻는다면 난 임신 안 했을 때도 정적인 요가를 즐긴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몸이 원체 유연하지 않아 힘들고 재미없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임신 초중기에는 그냥 몇 분 서있는 거 조차 힘들 정도로 체덧이 심해서 28주차가 되어서야 조금씩 걸어보기 시작했는데 걷기 시작하자마자 묽고 빨간 피가 비치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 휴식을 취하니 멈췄기 때문에 크게 걱정은 안 했지만 다음 날도 걷기 시작하니 또 같은 현상이 반복되었다. 이틀 연속으로 피가 비치니 혹시나 싶어 병원에 전화했더니 바로 내원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하필이면 주말이어서 평소에 다니는 클리닉이 아닌 내가 분만할 대학병원으로 가야만 했다.
아기 심장박동수가 정상인 걸 확인한 후 내진의 굴욕을 맞이했다. 레지던트가 내 경부를 살펴보더니 1cm 정도의 근종을 발견했다. 다행히 자궁에서 피가 나는 건 아니고 희한하게도 근종 가장자리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임신 바로 전후로 초음파 검사를 했을 땐 깨끗했었기 때문에 임신 중에 근종이 생긴게 분명했다. 레지던트가 의사한테 상의하러 가더니 이번엔 젊은 어탠딩 의사가 들어와서 또 다시 내진을 시작했다ㅠㅠㅠㅠ 육안으로 직접 봐서 가능하면 잡아당겨서 근종을 제거하겠다는 것이었다. 근종이 크면 출산하면서 수술로 제거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그냥 간단한 꼬집는(?) 시술로 제거 가능한 사이즈라 다행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내진이 아파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피가 많이 났던건지 더 이상 자극은 피하는 게 좋겠다고 그냥 피를 멈추는 회색분말로 된 약만 바르고 귀가 조치되었다(;;) 그 날 이후로 한 2틀 정도 회색약과 함께 갈색 피가 나왔지만 결국 멈췄고 의사는 그 후로 며칠간 운동도 하지 말고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29주차에 주치의를 방문해서 물어보니 피가 조금만 난 거라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다. 근종은 임신 중 호르몬 변화로 생기는 경우도 간혹 있고 아마도 걸을 때 근종부위가 자극이 됐던 것 뿐일 거라고 했다. 근종은 아이가 나오면 자연히 없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일단 지켜보고 나중에도 안 없어지면 그때 제거하자고 했다. 임신 후기엔 피가 비치는 일이 자주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왜 난 하필이면 주말에 피가 나가지고 경험 많은 우리 주치의도 못 보고 내진을 당한 건지... 하아... 아무튼 그 후로 유산소 운동을 재개했지만 한동안 피가 나진 않았다.
33주차
역류성 식도염과 숨막힘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다이어트해서 컨디션 안 좋을 때처럼 귀가 멍멍하고 잘 안 들릴 때가 있었다.
34주차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 원래 임신 기간 중 주수사진을 기록할 생각이 없었는데 문득 일생일대에 딱 한 번 임신할 건데 뭔가 증거를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래 살 찔 때 몸 전체적으로 찌는 스타일이라 그동안 살이 많이 쪘는지 몰랐는데 내가 소지한 청바지 중 가장 큰 청바지를 입었는데도 허벅지부터 엄청 낑기기 시작했다-_-; 간신히 엉덩이를 바지 속으로 구겨넣긴 했는데 역시나 지퍼를 잠글 수는 없었다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렇게 찰칵찰칵!
난 허리가 긴 편이라 배가 전체적으로 둥글게 나왔다기 보단 아랫배 위주로 나왔던 편이다. 38주차인 지금도 다행히 배꼽도 나오지 않고, 임신선도 없고, 튼살도 없다. 살찐 거 외엔 외모의 변화는 그다지 없는데 참 다행인 게 안 그래도 몸이 죽을 것 같은데 거기다가 외모 변화도 컸다면 정말 우울증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범범이가 좀 내려온건지 가끔 요로를 누가 꽈악 쥐어짜는 것 같이 아프기 시작했다. 이 고통은 38주인 지금도 계속 됨. 요로가 아프다 하면 방광염 증상을 의심하겠지만 그와는 다른 아픔이다. 방광염은 요로 끝이 아픈 거고 이건 Y존에 있는 방광에서부터 내려가는 요로 부분이 매우 아픈 것. 그리고 자궁경부가 꾸욱~ 꾸욱~하는 느낌으로 아파서 잠을 설치는 날도 있었다. 밑이 빠지는 느낌은 아니었고 그냥 속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태동 역시 점점 심해져서 태동이 있을 때 마다 토할 것 같은 느낌.. 임신 중기의 태동은 클럽에서 쿵쾅거리는 앰프 앞에 서있는 느낌이었다면 임신 후기의 태동은 내 몸 안에 앰프가 아예 들어있는 느낌이었다.
36주차
난 원래 잠이 많은데 불면증 때문에 지쳐가고 있었다. 너무 졸린데 가슴이 답답하고 속쓰림 때문에 잘 수가 없다. 간신히 1시간, 2시간, 3시간씩 앉아서 쪽잠을 자는 생활을 해야만 했다.
미국에선 원래 20주 초음파 검사를 마지막으로 초음파는 더이상 보지 않는데, 난 노산이라고 32~36주차에 한 번 더 볼 수 있었다. 늙어서 좋은 점도 있네ㅎㅎ 20주 초음파 때도 느꼈지만 범범이는 날 닮은 건지 누가 만지는 것을 극혐하는 것 같다. 초음파 기계가 닿자마자 또 계속 피하고 밀어낸다. 얼굴을 자꾸 팔로 가려서 안 보여주다가 살짝 보여준 옆 모습.
손가락을 자꾸 빨며 자꾸 저렇게 입을 쭉 내밀고 있어서 입술이 새 부리같이 나왔다ㅋㅋㅋ 귀엽다는 생각도 잠시, 곧 머리둘레가 이미 38주차 머리 크기라며 상위 84%라는 얘기에 패닉이 오기 시작했다. 남편 머리가 완전 대두라 (시중에서 파는 일반 사이즈 모자, 선글라스 안 맞음 -_-) 늘 걱정하던 부분이었는데 걱정이 현실이 되자 너무 무서웠다ㅠㅠㅠ 다행히 몸은 주수보다 작은 편이라고... 머리는 크고 몸은 작고... 츄파츕스야 뭐야
미국은 산모 체중 관리도 안 해주고 아무 고나리를 안 해주기 때문에 늘 불안에 떨었는데 "열달후에"라는 고마운 앱을 추천 받았다. 태아 스펙과 산모 체중 스펙을 입력하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어느 정도인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미국 시골 산모들에겐 꼭 필요한 앱이라고 생각한다. 36주차의 범범이는 6lb 2oz (2778g)로 미국에선 39%로 작은 편에 속하지만 사실 체중 관리받는 한국 아기들에 비하면 보통에서 살짝 큰 편인 것이었던 것이다!
초음파로 재는 무게가 정확한건 아니라지만 머리가 크고 몸무게도 보통 이상이었기 때문에 난 무조건 아기가 빨리 나오길 바랄 뿐이었다. 법적으로 유도분만이 가능한 39주 0일로 유도를 잡아놓고 아기 빨리 방빼는 방법이란 방법은 다 해보기로 했다.
걷기 운동도 1시간에서 1시간 반으로 시간을 늘리고 비가 오는 날 빼고는 되도록 나가려고 노력했다. 신기하게도 유산소 양을 늘린 날 또 전처럼 빨간 피가 비가 비추었지만 그 후론 피가 나지 않았다.
막달 운동기록표 (● 근력, ● 유산소)
유산소와 스쿼트, 밭매기 자세, 유륜 각질 제거, 가슴 마사지, 매운 음식 먹기, 대추 먹기, 짐볼 타기 등등 자연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다만 짐볼은 너무 세게 타면 아기가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양수부터 터질 가능성이 있어서 적당한 수준으로 탔다. 근데 다른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천장에 닿도록 타도 안 나올 애들은 안 나온다고 하더라고ㅋㅋㅋ
유륜 각질은 화장솜에 오일을 적셔 1시간 동안 유륜을 불린 후 닦아보았는데 생각보다 별로 안 나와서 일주일에 한 번만 했다. 빡빡 닦아야 갈색 때가 쬐끔 닦이는 수준인데 맞게 한건지 모르겠네?
37주차
임신 후기부터 배뭉침이 싹 사라지고 아무런 복통이 없어서 오히려 진통을 기다리던 막달에는 배뭉침이 없는 게 걱정이었는데 37주부터 드디어 생리통처럼 아랫배가 살살 아픈 가진통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하루에 한두번만 아팠기 때문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가슴 통증도 생기긴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거품뇨를 보기 시작했다. 다리 붓기도 점점 더 심해져서 심한 날은 밭매기 자세도 안될 정도로 다리가 많이 부었는데 난 단백뇨가 아닐까, 임신중독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주치의는 내가 임신 전부터 후기까지 초지일관으로 저혈압 (90/60)이라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임신중독 검사도 안 해주더라고...
38주차
가슴 통증이 줄고 숨 쉬는 게 한결 나아졌다. 하지만 혈액순환이 잘 안 되는 건지 다리에 쥐가 잘 나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번 정도 있던 가진통 역시 없어져버렸다 ㅠ;;
다들 내진이 싫다곤 하지만 나는 하루빨리 출산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36주부터 1주일마다 내진을 받았다. 36주에 0.5cm이 열렸다고 해서 빠른 출산을 기대를 했는데 37주에도 0.5cm였고, 38주엔 고작 1cm가 열려 있었다... 근데 38주 내진 시 의사가 경부가 많이 얇아졌고 very receptive하다고 좋은 조짐이라고 일러줬다. 하지만 아기는 결국 유도분만 예약일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젠 그냥 다 포기하고 제발 유도분만만이라도 잘 걸리길 바랄 뿐...
임신 내내 식단관리가 잘 안 됐다. 특히 입덧이 끝나고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하던 때엔 그나마 먹.을. 때.만. 괜찮아서 자꾸 간식을 먹어댔다. 그래서 목표였던 8kg는 진작에 물 건너가고 체중 총 10kg 증량해버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눼... 그냥 애 낳고 다이어트하겠슴돠...
이렇게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인 임신의 막이 내린다. 내일 유도분만이 잘 되서 무통도 잘 걸리고 힘들지 않게 순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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