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에서 밝혔듯 36주차 초음파 때 아기 머리크기가 2주나 앞선 게 무서워서 39주 0일 오전 11시에 유도분만을 잡아놓았었다. 나는 버지니아 대학병원에서 (University of Virginia, UVA) 출산을 했고 내가 알기로 하루에 세 타임 유도분만이 가능하다고 들었다. 병원 입원 후기는 다음 포스팅에 더 자세히 남기겠다. 초산의 경우 유도는 보통 하루 이상 걸린다고 아침식사는 든든히 하고 오라고 했지만 난 혹시나 모를 불상사를 위해 아주 간단하게 먹었다.

5월 23일

11:30 AM - 수액 (IV) 줄 연결 및 초음파. 핏줄이 잘 보인다며 한 번에 성공.

11:50 AM - 이미 자궁문이 2~3cm 열린 상태고 아기 머리가 골반에 살짝 내려온 상태라 굳이 벌룬을 넣을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며 벌룬을 삽입했다. 벌룬 시술은 생각보다 안 아팠다. 벌룬은 화장실을 다녀올 때 자연스럽게 빠져나올 거라고 했다. 간호사들이 모니터를 확인하며 진통이 있다고 했는데 난 사실 그다지 못 느꼈다. 그러다 아주 살짝 생리통처럼 아프다가 점점 더 아파오기 시작했다.

12:30 AM - 수액 투여 시작. 이미 진통이 있기 때문에 피토신 투여는 좀 미루기로 했다.

1:20 PM - 화장실을 다녀왔는데도 벌룬이 빠지지 않아 간호사가 쏙~ 빼줬다.

2:50 PM - 통증이 2분 간격으로 오기 시작

3:10 PM - 4cm 열림. 나 같이 배가 많이 나오지 않은 산모의 경우, 진통 모니터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해서 진통이 아닌 것도 진통으로 잡힐 수도 있다며 양수를 터뜨리고 모니터를 안에 붙이자고 했다. 양수를 터뜨리려고 레지던트가 손을 넣었는데 항문 쪽이 진짜 너무 아팠다 ㅠ 뜨거운 물이 펑펑~ 쏟아지고 그 후로는 진통이 줄었다.

3:30 PM - 피토신 (레벨 2) 투여 시작. 아프진 않았지만 무통을 미리 요청했더니 아플 때 맞아야 더 효과적이라며 기다리라고 했다. 15분 후 진통 다시 시작.

4:05 PM - 피토신 레벨 4로 증량. 옥시토신 극대화를 위해 앙쥬 사진 봤다가 눈물만 흘렸다ㅋ;

6:00 PM - 드디어 에피듀럴 줄 연결. 척추에 주사바늘 들어갈 때 아프다고 들었는데 난 마취제 맞을 때만 좀 아프고 말았다. 다리가 따뜻해졌다가 하반신의 느낌이 거의 안 나게 되었다. 왼쪽 배가 추웠다. 원래도 저혈압인데 혈압이 더 떨어졌다가 50/100으로 다시 안정을 찾았다. 피토신 레벨 6으로 증량. 무통천국 시작.

6:30 PM - 피토신 레벨 8로 증량

7:05 PM - 에피 버튼을 줬다 +_+

7:15 PM - 소변줄을 연결해 방광을 비움. 이것도 힘들다고 들었는데 무통 덕분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피토신 레벨 10으로 증량

7:25 PM - 아기가 내려오는 걸 돕기 위해 앉아서 30분간 나비자세를 함. 무통은 누워있을 때 잘 듣는다더니 앉으니까 정말 진통이 생리통같이 느껴졌다. 에피 버튼을 누르니 추웠다.

7:50 PM - 다리 사이에 30분간 피넛볼을 끼웠다. 피토신 양은 더이상 늘리지 않기로 했다.

8:15 PM - 5cm 열림. 앉아 있는 자세가 매우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피넛볼을 반대편으로 끼우고 계속 하기로 했다. 에피 때문에 배랑 가슴이 간지러웠다.

9:15 PM - 나비자세로 전환. 내가 5cm만 열렸다고 투덜거리니까 에피 때문에 자궁이 긴장해서 그렇다고 지금은 이완돼서 수축이 자주 되고 있으니 금방 열릴거라고 했다. 6센치부턴 금방 열린다고 했다. 아기가 잘 내려오고 스트레스도 없어서 좋다고 안심시켜줬다. 누워있는 게 최악이라고 난 잘 하고 있다고 격려도 잊지 않았다.

9:30 PM - 다리 마취 풀리고 진통이 느껴져서 에피를 눌렀다.

10:10 PM - 토할 것 같고 살짝 어지러워 간호사 불렀더니 에피 때문이 아니라 수축에 진전을 보일 때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너무 목 말라서 사과쥬스를 마셨다. (수술할 줄 알았으면 안 마실걸 ㅠ) 다시 피넛볼을 꼈다.

10:40 PM - 7cm 열림. 아기가 많이 내려와서 방광도 잘 안 비워진다고 했다. 다행히 아기는 바닥을 보고 있다고. 메스껍다고 했더니 조프림 투여하곤 내게 좀 자두라고 했다.

10:50 PM - 자라고 눕혔는데 두통이 심해서 잘 수가 없었다. IV로 뭔가 차가운 걸 주입하기 시작했는데 뭔지 못 봤다. 너무 추웠다.

11:15 PM - 다시 앉아서 피넛볼을 끼니 나도 두통이 줄고 아기도 더 좋아한다고 했다.

11:35 PM - 아기 머리가 보이나 육안으로 확인했으나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11:40 PM - 갑자기 의사 간호사들이 8명 몰려오더니 자궁 수축이 너무 많이 돼서 아기 심장박동이 떨어진다고 했다. 아마도 숨을 참아서 그런 것 같다고... 내진할 때 아기 머리가 손에서 미끄러진다며 아마도 머리카락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내 몸을 뒤집어서 엎드린 고양이 자세로 엉덩이 까고 팔에 수축 줄이는 주사를 맞았다. 자세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굴욕적이었다ㅠㅠ 곧 아기 심박수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너무 추웠다.

 

5월 24일

12:00 AM - 너무 추워서 온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속이 메스꺼웠다.

12:35 AM - 피토신 레벨 2 재개.

1:05 AM - 피토신 레벨 4로 증량. 에피 버튼을 눌렀다.

1:35 AM - 피토신 레벨 6

2:12 AM - 피토신 레벨 8

2:30 AM - 9cm 열림. 아까는 바닥을 보고 있다더니 이번에 내진을 하더니 아기가 하늘을 보고 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했다. WTF. 아기를 돌리기 위해 고양이 자세를 취하고 간절히 기도를 했다.

3:05 AM - 또 의사들이 여러명 몰려와서 말하기를 8~9cm 가는데 비정상적으로 오래 걸려서 뭔가 잘못 된 것 같아서 확인해보니 아기 자세가 좋지 않다고 했다. 목을 이상하게 가누고 있다고. 그래서 피토신을 투여하면 아기 심박수가 떨어지는 거라고. 제왕을 해야할 것 같다고 하는데 나는 알겠다고 하면서도 수술 받기 싫어 오열했다ㅋㅋㅋ 내가 우니까 다들 위로해주는데 솔직히 쪽팔려서 울기 싫었는데 눈물은 계속 났다. 내가 40주 채웠으면 자연분만 가능했던 거냐고 물으니 절대 그런 게 아니라고 자책하지 말라고 했다.

이후로는 마취가 들어가서 시간 감각을 잃었다.

분명히 의식이 있긴 한데 졸음이 쏟아져서 눈을 뜰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비몽사몽 헤롱헤롱하는데... 수술실에 들어가니 (아마도) 레지던트가 10cm 열렸다며 마지막으로 자연분만에 도전해보자는 것이다-_-;; 속으로 '아니, 그럴 거였으면 마취 전에 말을 했어야지 지금 아무 느낌도 안 나고 졸려 죽겠는데 무슨 푸쉬여...' 라고 생각하는데 어탠딩 의사가 아기 자세가 너무 안 좋아서 자분은 불가능하다고 해서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 직전에 아까 마신 사과쥬스를 다 토해냈다.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덜덜 떨리는데 너무 졸립고, 그냥 이렇게 자도 되는 건가 싶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남편은 내 손을 잡고 울고 있었다. 나중에 왜 울었냐고 물어보니 내가 수술 받기 싫어 울때부터 따라 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기가 자기를 닮아 머리가 커서 이렇게 된건가 싶어서 자책하고 있었단다ㅋㅋㅋ

한국에선 아기 꺼내는 느낌같은 게 다 난다고 하던데, 난 정말 80% 기절했던 상태라.. 수술 느낌은 하나도 못 느꼈고 그냥 아기 나왔다고 투명막 너머로 잠깐 보여준 거 뿐이 기억이 없다. 그리고 수술 끝나고 또 토한 것 정도? 역시 미국은 약을 최대치로 막 쓰나봐...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4:01 AM - 그리하여 범범이가 태어났습니다

범범이는 이제껏 병원에서 듣던 말과는 전혀 다르게 태어났다. 머리카락도 별로 없고 몸무게도 3.1kg로 생각보다 적게 나갔으며 작고 소듕하게 생긴 것이었다. 39주차 다른 태아들과 비교했을 때 체중이 31%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니 초음파로 보는 몸무게 너무 믿지 마세용...

난 애가 어떻게 생겼는지 볼 겨를도 없이 쏟아지는 잠에 져서 오전 7시가 되도록 계속 잠만 잤다. 그래서 아기 돌보는 법 (속싸개 싸는 법, 분유 먹이는 법, 트름시키는 법 등) 은 다 남편 혼자 했다^^; 제왕하면 스킨투스킨도 안 하는 듯?? 주변 서포트 없는 싱글맘은 제왕절개 받으면 어떻게 하지..? 할 정도로 난 기절 상태였고 아기 돌보는 건 남편이 다 알아서 했다.

잠에서 깬 건 오전이었지만 몸에 힘이 없어서 오후가 되서야 제대로 정신 차리고 안아본 범범쓰.

제왕으로 낳아서 그런지 그다지 쭈글거리지도 않고 태지도 없고 너무 반짝반짝 똘망똘망 예쁘게 생겼다. 눈도 잘 뜨고 있고.. 신생아 맞냐며ㅋㅋ

아무튼 100% 자연분만할 생각만 하고 제왕절개에 대해 너무 안 알아본 게 사실 후회된다. 평소에 자분은 일시불, 제왕은 할부라는 말만 철석 같이 믿고, 제왕하면 다음날 장기가 쏟아지는 느낌이네 어쩌네.. 그런 말 많이 들었는데.. 내가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적어도 약을 펑펑 쓰는 미국에선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수술 당일엔 힘이 좀 없었지만 진통제 덕분에 다음 날 일어서고 움직이는 것도 할만 했고, 가장 힘들었던 점은 하반신이 말도 안 되게 부어서 쓰라리고 아팠던 거지만 임신했을 때 24시간 하루 종일 죽을 맛이던 느낌과는 다르게 그냥 순간 순간 통증이 있던 거라 훨씬 나았다. 간호사들이 나보고 자연분만한 사람처럼 잘 움직인다고 했다. 진통제천국의 참의미를 알았으면 유도한다고 깝치지 않고 처음부터 제왕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지금은 일단 임신이 끝난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다.

다음 후기에선 UVA 병원 관련 사항을 남길까 한다.